‘경복궁 근정전(勤政殿)으로 들어가는 부인 견학단 일행’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1925년 11월 2일 조선일보에 실렸다. 무슨 일로 부인들이 근정전으로 들어가는 것인지 그들을 따라 그 시절 속으로 들어가 본다.
“조선 여자 청년회에서 주최한 제13회 부인 견학단은 31일(토요일) 오전 11시부터 경성역과 경복궁을 견학하고, 오후 3시 반에 해산하였다. 청명한 가을 일기라 정각 전부터 모여드는 꽃 같은 처녀, 젊은 부인, 머리가 반 남아 센 늙은 부인할 것 없이 경성역 일대에는 자못 화기난만(和氣爛漫)한 여자의 세계를 이루었고 특별히 중국 여자 세 사람이 참가하여 한 이채(異彩)를 띄었었다. 304명의 견학단 일행은 2대에 나누어 둘씩 둘씩 역원들의 안내로 3등 대합실을 비롯하여 창고, 돈 주고 들어가는 변소 등을 차례차례 구경하고 나왔다. 경성역은 1922년 6월 1일에 기공하여 금년 9월 30일에 준성(竣成)하였으니 건물의 연면적은 1만7269평방 미돌(米突·meter)이요, 총 공사 비용은 1,945,946원이라 한다. 휘황찬란한 설비에 넋을 잃고 구경하던 단원 일행은 발길을 돌려 의주통 전차 종점으로 나섰다.”
일행들은 전차를 타고 광화문 앞에 다다라 곧 제자리를 떠나게 될 궁궐의 문과 마주했다. “광화문! 아, 얼마나 우리의 귀에 익숙한 이름이냐. 춘풍추우(春風秋雨) 수백 성상(星霜)에 갖은 환란과 온갖 풍파를 모조리 겪고 이제 마지막 운명까지 당하게 된 옛 궁궐의 정문이다. 전차에서 내린 우리 단원 중에는 감회 깊은 어조로 ‘이 문이 헐린대요?’ 하고 묻는 이도 있고 ‘나는 마지막 작별로 왔어요’ 하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씻는 이도 있었다. 삼천리강산에 주인이 바뀐 오늘날 부질없는 이야기를 더 할 필요가 있으랴마는 머지 아니하여 이 문은 우리와 작별하고 근정전 동편으로 쫓겨 가서 저 눈물겨운 귀양살이할 신세를 생각하니, 누구나 감개무량한 옛 회포가 일어나지 못할 줄 안다.”
광화문을 지나 경복궁에 들어선 견학단은 궁궐 곳곳을 둘러보며 옛 조선의 흔적을 만난다. “우리는 먼저 박물관을 향하였다. 우리 조상들이 사용하던 여러 가지 그릇과 금은보석의 귀중한 패물을 보고 우리는 다만 ‘으아’ ‘으하’ 놀랄 뿐이었다. 300년 전 우리 조선의 예술은 문명하다고 일컫는 20세기 오늘 사람으로는 감히 추측도 못하게 굉장히 발달하였었음을 깊이 느끼었다. 여기서 나와 일행은 폐포파립(폐袍破笠) 고단한 행색에서 하루아침에 조선 천지를 장악에 넣은 일세의 호걸 대원군의 권세로 중수(重修)한 것이, 60년을 지난 오늘에 눈물 어린 폐허가 될 줄이야 어느 누가 뜻이나 하였으랴. 우리는 묵묵한 태도로 사정전, 천추전을 돌아서 경회루로 나아갔다. 화조월석(花鳥月夕)에 연악(宴樂)의 소리를 듣던 경회루 옛 못은 아직도 푸른 물이 그대로 흐르건만 어여쁜 궁녀들의 발을 옮기던 궁정(宮庭)은 거치른 가을 풀이 망망할 뿐이다. 태양은 동에서 떠서 서로 지고 봄꽃은 여전히 붉고 가을 달도 여전히 밝건마는 당년의 영화(榮華)는 흔적이 없이 사라지고 650만 원의 경비로 금년에 낙성할 총독부 마천각(摩天閣)이 보일 뿐이다.”
19세기발전소 대표
※ 위 글은 당시 지면 내용을 오늘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풀어서 옮기되, 일부 한자어와 문장의 옛 투를 살려서 100년 전 한국 교양인들과의 소통을 꾀했다.